잡다구리

조선의 왕이름 시호, 묘호 조, 종, 군 구별은 어떻게 했을까

황조롱이 2010. 12. 9. 21:06
[퍼온글입니다. 출처 모름]

1. 정치적 관점

왕이 죽으면 신주를 종묘에 올릴 때 조정에서 새로 등극한 왕과 대신이 의논해 정하는 것을 묘호라 합니다. 태조(太祖), 세종(世宗), 중종(中宗) 같은 묘호는 왕들의 이름이 아닙니다. 왕들이 죽은 후에 그의 신주를 모시는 종묘에 봉안된 칭호 입니다. 왕의 생전이나 죽은 후에 감히 왕의 이름을 부를 수 없기에, 살아서는 "전하''주상'상감마마 라고 불렀고 죽어서는 묘호나 능호가 왕의 이름을 대신했습니다.

흔히 공(功)이 있는 왕에겐 조(祖)를 붙이고 덕(德)이 있는 왕에겐 종(宗)을 붙인다 합니다. 이것을 조공종덕(祖功宗德)이라 하고 보통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500년 왕조 조선왕들의 묘호를 보면 이런 규칙이 지켜졌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조.종의 유래.
문제가 되는 이 조공종덕이라는 말의 유래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 효문본기(孝文本紀)에서 문제(文帝) 유항(B.C.203 -157)에 의하면 '왕 중에서 공적이 있는 자는 '祖'라고 하고, 덕망이 있는 자는 '宗'을 붙여 사용한다(祖功宗德)고 하였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임진왜란을 당한 선조나 병자호란을 겪은 인조가 공이 있어서 조를 썼다고는 생각할수 없습니다.여기엔 아무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조는 선종(宣宗)이었으나 국난을 극복했다는 공을 억지로 갖다 붙여 후에 조를 얻어 쓰게 됩니다. 기실 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들이었기에 종법을 피하기 위한 핑계였습니다.조선조의 27대 왕 중 묘호가 조인 왕은 추존된 사도세자 장조와 효명세자 문조 외에,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7명입니다.

왕조를 창업한 왕에게 태조를 쓴다는 것은 고려나 조선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조를 쓴 왕은 태조 왕건밖에 없습니다. 조선시대의 정신적 지주가 종묘사직이며 이중 종묘의 근원은 왕의 맏아들로 왕위를 물려받아 이어 내려온 종(宗)법입니다.왕위를 물려받는 왕자는 후궁 아닌 왕비가 낳은 대군이어야 했고 그 중 맏아들이 우선권을 가졌습니다. 이 종법이 처음 깨진 것이 7대 세조라는 묘호 입니다. 세조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고 서열로 치자면 단종의 후손이 될 수 없기에 종(宗)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예종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조가 죽고 나자 묘호를 정할 때 예종의 강력한 주장으로 조를 쓰게 된 것입니다.

조선 전기는 세조를 제외하고 대군이 왕위를 잇는 종법이 무난히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선조에 이르면 명종에게 대를 이을 자손이 없고 왕위를 물려줄 왕자가 없자 14대 선조가 즉위하면서 다시 종법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선조는 중종의 손자이며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은 중종과 창빈 안씨 사이에 낳은 7째 아들입니다. 선조는 덕흥대원군의 3째 아들입니다. 덕흥대원군은 대군이 아닌 왕자였기에 왕으로 추존되지 못했습니다. 철종의 아버지 은언군의 손자 전계대원군,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은 왕자가 아니기에 왕으로 추존되지 못한 것입니다.선조가 죽자 선종(宣宗)이었으나 15대 광해군 8년 선조(宣祖)로 바꿉니다.

왕비가 낳은 대군으로 대를 잇는다는 종법은 숙종 이후 계속된 왕비 불임으로 어차피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 이전에 종법을 철저하게 파괴한 것은 16대 인조였습니다. 인조는 군사를 몰고 들어가 멀쩡하게 정치 잘하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쿠데타로 왕위에 앉은 왕입니다. 인조의 아버지는 선조와 인빈 김씨 사이에 낳은 정원군입니다. 정원군은 왕비가 낳은 대군이 아닌 왕자였으니 조선왕실의 종법으로 보아 왕으로 추존되지 못하지만 쿠데타로 잡은 정권이 다 그렇듯이 정통성을 만들기 위해 묘에 불과했던 정원군의 묘를 1627년(인조5년) 김포로 천장하고 흥경원(興慶園)으로 추숭합니다. 그 후 인조10년 인조의 마음을 잘 알고 있던 반정공신 이귀의 주청에 따라 원종(元宗)이라는 묘호와 장릉(章陵)이라는 능호를 올려 아예 추존왕으로 만들었고 장릉은 조선 최초의 추존왕릉이 됐습니다.

대군이나 세자가 아닌 왕자로 추숭왕이 된 건 원종이 처음이자 마지막 입니다.1649년 인조가 죽자 열조(烈祖)로 묘호를 정했으나 효종이 불만을 표하자 송시열이 병자호란을 극복한 공이 있다며 인조를 쓸 것을 건의했고 인조(仁祖)로 묘호가 바뀝니다. 이때 유계(兪棨)는 인조의 묘호를 정할 때 조(祖)자의 사용을 반대하고 종(宗)자를 주장하다가 이듬해 선왕을 욕되게 하였다는 죄로 온성과 영월에 유배되는 소동까지 벌어졌습니다.

인조의 묘호는 정치적인 해석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며 이 시대는 송시열의 예법 주장이 곧 법이었고 송시열은 효종의 스승이었습니다. 이 때 조공종덕이라는 핑계가 인조의 묘호에 적용됩니다. 아버지가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종법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효종은 잘 알고 있었으니 핑계가 필요했고 송시열은 이의 해답을 가져다 준 셈입니다.실상 정상으로 왕위를 이을 때는 조니 종이니 따질 필요 없이 종으로 가면 그만이었지만 내막이 복잡할 때는 왕심을 헤아려 '조공종덕'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신들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17대 효종 이후 18대 현종과 19대 숙종, 20대 경종까지는 왕비가 출생한 왕자이고 세자였기에 종을 쓰는 데 무리가 없었습니다.21대 영조는 숙빈 최씨의 아들이니 당연히 종을 쓸 수 없었습니다. 22대 정조 역시 아버지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서인으로 폐했기에 종을 쓸 수 없었고 23대 순조 역시 정조와 수빈 박씨 소생이라 종을 쓸 수 없었습니다.이들 왕은 영종(英宗) 정종(正宗) 순종(純宗)이었으나 1890년(고종27년) 영조, 1899년(광무3년) 정조, 순조로 각각 바로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철종(哲宗)은 바꾸지 않았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선왕을 종법을 내세워 당장 묘호를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고 고종의 가계와 철종의 가계가 같다는 점에서 후로 미룬 듯싶습니다.

이후 황제로 등극했고 국운이 기우는 소용돌이 속에서 종법은 별 의미가 없어졌다고 봐야 합니다.여기서 잠깐 고종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와 숙빈 임씨 사이에 낳은 은신군과 은언군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은언군의 순자가 철종이고 은신군의 후손이 고종입니다. 고종이 바로잡은 종법이 영조부터 해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융희2년(1908) 철종은 철종장황제로 추존되지만 종법을 고치는 일을 벌이기엔 이미 국운이 기울었고 이후 바로잡을 기회가 없었고 1910년 조선왕조는 멸망했습니다.

조종(祖宗)이란 묘호가 붙은 역사의 뒷면을 살펴보면 종법 계승인지 아닌지를 두고 벌인 사건들이 드러납니다. 겉으로 조공종덕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종법에 어긋난 왕들의 위신을 살려준 내면에는 여전히 종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조선왕실의 고민이 엿보이는것 입니다. 혼란스러웠던 조종(祖宗)의 실체를 알면 조선의 역사가 더 자세히 들여다보일 것입니다.



광해군에 대해서.

조선의 15대왕인 광해군은 조선의 27대 왕 중에서 가장 외교가 뛰어난 임금으로 꼽힙니다.당시는 임진왜란으로인한 후유증으로 명나라가 피폐해가고 신흥세력인 만주족의 후금이 새로히 일어나 신흥강국으로 부상하던때 였습니다.두나라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시기였으나 당시 임금 광해군의 판단으로 등거리 외교 즉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빚을 발하는 시기였습니다.이것은 시대를 잘 읽은 광해군의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의 대립을 살피면서, 어느한쪽에 치우치지않고 대세를 살피면서 성곽을 보수하여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명나라의 강권으로 파병한 강홍립으로 하여금 판세를 보고 기회를 보아 후금에 항복하라고 하고 이에 따라서 후금의 침략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인조반정때의 명분은 몇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먼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아우들을 죽인 폐륜적인 행위를 했다는점인데 역대왕들이 왕권강화를 위해 정적을 제거했던 사례를 보면 심한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태종은 자기 이복동생인 방번.방석을 죽였고 계모인 강비 묘를 강제로 이장시키기도 했습니다. 세조도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며 현덕왕후 무덤을 파해치기도 했습니다.광해군은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했고 영창대군 살해도 반대했었습니다. 그러나 대북파의 힘에 밀려 어쩔수없이 그렇게 된것입니다.

또하나의 이유는 명나라를 따르지 않고 오랑캐를 따르고 우리를 임진왜란에서 구해준 명나라를 배신했다는 이유인데 이것은 지나친 대명사대주의에 빠진 인조와 서인들의 입장입니다.광해군 시기에는 명나라는 망해 가고 있었고, 후금은 힘이 점점 커지면서 일어서는 나라였습니다. 광해군은 이것을 간파하고 중립외교주의 노선을 걸었습니다. 이때에 조선은 명과 후금사이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광해군은 이걸 기회로 국방을 튼튼히하고 이제껏 지켜오던 명과의 군신관계를 청산하고 대등한 위치로까지 끌어 올릴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서인들은 인목대비 폐위건은 폐륜으로 몰고 망해가던 명나라를 섬겨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인조반정을 일으켰고 결국 이게 화근이 되어 정묘.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왕이 삼전도에서 무릎꿇는 치욕을 맛봅니다.

광해군을 연산군에 더불어 폭군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광해군은 폭군이 아닙니다.오히려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일으켜보고자 힘쓰셨고, 외교부분에도 탁월한 발상을 제기하신 뛰어난 왕입니다.그러나 자기 꿈을 펴보지도 못한채 사대주의사상에 빠진 서인들의 인조반정이라는 안타까운 역모로 인해 폐위되고 마는 불운한 왕이기도 합니다.



2. 제사와 족보의 관점

조선왕조는 태조 이성계로 부터 시작해서 제27대 순종황제까지 이며 순서는
1대 태조 2대 정종 3대 태종 4대 세종 5대 문종 6대 단종 7대 세조 8대 예종 9대성종 10대 연산군 11대 중종 12대 인종 13대 명종 14대 선조 15대 광해군 16대 인조 17대 효종 18대 현종 19대 숙종 20대 경종 21대 영조 22대 정조 23대 순조 24대 헌종 25대 철종 26대 고종 27대 순종 입니다.

묘호(廟號)에 관한 이견으로 나라를 세웠거나 변란에서 백성을 구한 커다란 업적이 있는 왕이 조가 되고. 앞선 왕의 치적을 이어 덕(德)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문물을 융성하게 한 왕은 종으로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것은 흔히 "祖功宗德"이니 "有功曰祖, 有德曰宗"이라 하여, 공이 많으면 祖, 덕이 많으면 宗字를 붙인다는 설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묘호의 구분은 이것으로 이해하기에는 합당하지 않다고 할수 있다.

오히려 적통,직계 승계냐 방계 승계이냐가 조와 종으로 구분하고 또한 세자혹은 세제후 임금이 되신분이냐 그렇지 않고 새로 임금이 되신분이냐로 구분하면 쉬울것이다. 이것은 족보를 조금 알면 쉬운 문제 일것이다.
쉽게 말해서 제사를 모실때 직계 부모 항렬이나 형제의 제사는 모실수 있으나 삼촌이 조카의 제사를 모실수는 없으므로 새로운 조가 생기게 된다.

원래는 창업 개국한 왕과 그의 四代祖까지만 '할아비 祖'字를 붙이고 그 뒤를 이은 왕들에게는 宗統의 계승자라 하여 宗字를 붙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조선왕조의 창업 개국한 이성계는 태조이며 부 환조(이자춘) 조부 도조(춘) 증조부 익조(행리) 고조부 목조(안사)까지가 조이다.

2대 정종은 태조의 적통자(당시 맏형이 없어서 정종이 적장자임)이므로 종이며
3대 태종은 정종의 세제(임금의 동생이 다음 임금으로 지정됨)였으므로 종이 된다.
4대 세종은 세째였지만 태종의 정식 세자 책봉이 되었으며 직계승계이시다.
5대 문종
6대 단종까지 이어지다가 ]

7대 세조가 임금이 되시는것은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이 조카의 다음 임금자리를 이었으므로 이것은 단종의 직계가 없어서 결국 방계(적통이지만 선왕인 단종계에서는 방계)로 왕위 계승이 넘어 간것이다.
8대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이지만 형인 의경세자(도원군 추존-덕종)가 20세의 나이로 일찍 죽음으로 인해 정식 세자책봉이 되었으며 세조의 적통승계이므로 예종이시다.
9대 성종은 원래 의경세자(도원군)의 아들(자을산군)이신데 예종이 자손없이 승하하였고 또한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서 세자 책봉을 받았다. 즉 원래는 의경세자의 아들이시지만 족보상으로는 예종의 아들이시다는것이다.

10대 연산군은 성종의 적통장자이지만 임금으로서의 가치를 평가 받지 못하였으므로 왕자의 신분인 군으로 남아 있는것이다.
조선왕조에는 임금이 군으로 강등된것은 연산군과 광해군 두분이시다.

11대 중종은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가 17세의 나이로 소생없이 죽게 되고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후에 세번째 왕비인 정현왕후 윤씨의 소생(진성대군)이므로 적통이시다.

12대 인종은 중종의 적장이시고 여섯살에 세자로 책봉되어 무려 25년간이나 세자로 머물러 있다가 약9개월 정도 재위, 자녀 없이 승하 함

13대 명종은 중종의 두번째 왕비인 문정황후 윤씨의 아들이시다.

14대 선조임금은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중종의 후궁 창빈안씨의 소생 덕흥군(추존-덕흥대원군)의 둘째아들인 하성군(선조)이 명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임금이 되시니 처음에는 선종이라고 하였으나 이로서 조선왕조는 적통승계의 막을 내리고 진정한 방계승계(서자방계)가 이루어 짐으로 선조라 한다.

15대 광해군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로 임금이 되었으나 군으로 강등되어 임금으로 평가 받지 못했다.

16대 인조(능양군)는 선조와 인빈김씨 사이의 세째 아들 정원군(추존-원종)의 장남으로 직접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 반정으로 임금이 되신다. 인조는 광해군의 이복 조카이므로 광해군의 아들 세자 질에게 돌아갈 임금자리가 방계인 인조(능양군)에게 계승되었으므로 인조 이시다.

17대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봉림대군)이시나 소현세자의 의문사로 적통 승계하신다.

18대 현종은 효종의 맏아들이며 인선왕후 장씨의 소생이시다.

19대 숙종은 현종의 외동아들로 명성왕후 김씨의 소생이시다.

20대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이시며 희빈 장씨 소생이시다. 정비 인현왕후가 자식이 없어서 2세때 인현왕후의 양자로 입적되어 원자 정호를 받았으며 적통 계승이시다.

21대 영조임금은 후사 없이 승하 하신 경종이 원래 병약 하여 숙종이 경종의 후사로 연잉군(영조)을 정할것을 명하였고 또한 경종에 의해 왕세제로 책봉 되었다.
그러나 영조(연잉군)은 숙종과 무수리출신 숙빈최씨 소생으시다. 방계 승통이시다.

22대 정조임금은 영조와 영빈 이씨 사이의 장헌(사도)세자(추존-장조)의 아들이시다. 영조임금의 적장자 효장세자(추존-진종)가 10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어서 양자로 입적하여 승계 하신다.
원래 효장 세자가 일찍 죽고 사도 세자가 세자대리청정을 했으므로 정조가 사도 세자의 아들로 임금이 되셨다면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 되지 못할것이고 사도세자는 장조가 아닌 장종으로 추존 될것이다. 그렇다면 정조도 정종으로 되는것이다. 그렇지만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 되어서 승계 하였으므로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 되었고 사도 세자는 정조의 생부이므로 장조가 되는것이며 정조는 장조계와는 또 다른 방계이므로 정조가 되는것이다.

23대 순조임금은 정조의 둘째아들이며 수빈박씨의 소생이다.
(정조와 의빈박씨 사이에는 문효세자가 있었으며 어린나이에 일찍 죽었다. 순조가 순종이 아닌 순조로 분리 된것은 알수가 없음..적통 장자도 아니며 서자 방통승계이기 때문일것이다.)

24대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며 순조의 적장자이신 효명세자(추존-익종)와 신정왕후 조씨의 아들이시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4년을 하였으며 22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다.

25대 철종은 안동김씨 세도 정치의 절정기에 그 당시 헌종의6촌 이내의 형제 항렬 왕족이 없었다. 7촌이내의 조카항렬은 몇 있었으나 항렬을 무시한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의해 헌종의 7촌 아저씨뻘 되는 강화도령 원범을 임금으로 앉힘으로 인해 임금이 되신다. 종조에 대한 견해를 밝힐수 없음.
추측 하건데 철종은 헌종의 아저씨 뻘이므로 조가 되어야 하나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의 아들 전계대원군(추존)의 아들이시므로 (장조계의 종이 아닐까 싶다.)

26대 고종은 할아버지 남연군이 원래의 인조의 세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6대손이었으나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정조의 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아버지 흥선 대원군(추존)은 촌수로 따지면 영조의 고손자가 되는것이다.
고종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추존-익종)의 정비 조대비에 의해서 양자로 입적되어 익종을 승계한다.(헌종과 형제 항렬)

27대 순종은 고종의 장남으로 명성황후 민씨의 소생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오류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위와 같이 족보와 제사를 이해하면 조종이 분리되는 이유가 쉽게 이해가 될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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